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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려지를 아십니까? ^^
작성자 원주한지 등록일 2011.05.31
조회수 3977 등록 IP 118.44.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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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지를 아십니까?

  1,211  2004.05.03



한나라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과 마의 섬유, 파포 등을 재료로 해서 서기 105년에 종이를 만든 이후 종이는 '생각하는 털 없는 원숭이'들인 우리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생각의 기록, 저장수단으로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요즈음 컴퓨터망을 통한 사이버 세계가 점점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는 하지만 컴퓨터의 도래와 함께 금방 올 것만 같았던 '종이 없는 세상'은 아직까지는 한 참을 기다려야 하며, 여전히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록방법이다.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종이는 두 가지 방면으로 쓰임새가 나눠졌다. 첫 째는 사상이나 생각을 기록하거나 그림과 글씨를 쓰는 미술용지로서의 용도, 즉 종이 위에 뭔가를 쓰고 그리는 용도요, 두 번째는 봉투도 만들고 포장도 하기도 하는, 말하자면 종이를 이용하는 용도다. 그 중에서 가장 다양하게 발달한 것이 그림이나 글씨를 쓰기 위한 이른바 서화지이다.


종이를 발명하고 붓과 먹을 발명해 인류의 기록문화에 큰 기여를 한 중국은, 그만큼 다양한 종이와 먹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종이의 경우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는 그만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각 지역마다 다양한 재료로 종이를 만들어 전국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다. 종이는 만드는 재료에 따라 麻(삼)紙, 藤(등나무)紙, 楮(닥나무)紙, 竹(대나무)紙, 桑皮(뽕나무껍질)紙, 海苔(바다풀)紙, 草紙 등으로 분류가 되거니와 만든 지방의 이름을 따서 蜀(사천성)紙, 峽(양자강 삼협지방)紙, 剡(절강성 섬현)紙, 宣(안휘성 선성현)紙 등의 이름이 생겼다.


이중에서 안휘성 선성현 일대에서 나오던 宣紙는, 먹이 잘 번지도록 얇으면서도 종이가 질기고 생산되는 양도 많아서 일찍이 당나라 때부터 전 중국의 사랑을 받더니, 결국에는 그림이나 글씨를 써넣은 종이의 통칭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화선지라고 부르는 종이 이름이 중국에서는 곧 '宣紙'인 것이다.


안휘성에서 나오는 선지는, 기본적으로 볏짚을 활용해 만든다. 그래서 이러한 제조기법이 서양인들의 눈에 들어오면서 중국의 서화지를 영어로 'rice paper'라고 번역해서 쓴다. 그런데 볏집 자체로 만드는 펄프는 아무래도 약하기 때문에 여기에 각종 재료를 첨가해서 슴으로 해서 수없이 많은 종류의 종이들이, 각각 다른 성질로 생산돼, 예술가들의 각기 다른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북경의 유리창이라는 데를 가면 그런 각양각색의 종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청나라 전성기인 건륭 황제 치세(1736~1795) 때부터 서적과 서화류의 집산지로 자리를 잡아온 유리창에는 동과 서로 이어지는 두 개의 큰 골목에 榮寶齋를 비롯한 유명한 수많은 서화상들이 즐비하고, 그 속에 들어가면 중국 전국의 이름 있는 종이들은, 말만하면, 턱 대령한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의 예술가들도 즐겨 찾고 있다.


그런데 중국 서화가들 사이에는 '高麗紙'라는 종이가 사랑을 받고 있다. 안휘성의 '宣紙'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서화가들 사이에 특수한 용도로 쓰여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그래서 북경 유리창의 서화재료를 파는 데에 가서 '고려지'를 보자고 하면 선지보다는 덜 하얗지만 약간 까칠까칠한 느낌의 종이를 내놓는다. 물론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두 집 건너야 있지만, 중국에서 '高麗'라는 이름이 들어간 종이를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나도 왜 이런 이름이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값이 비교적 삽니다. 그래서 중국의 화가, 서예가들도 이 종이를 찾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연습도 하고 실제로 작품을 하기도 합니다. 내가 알기로는 河北省 遷安(하북성 천안)이라는 곳에서 생산되는 종이입니다". 지포상(紙鋪商) 주인의 말은 궁금증만 더해준다. 실제로 이 고려지로 그림을 그린다는 북경 중앙미술학원(미술대학)의 유명한 功筆(아주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모사하는 기법)화가인 李振求 교수도 "오래 전부터 이 종이가 유통되고 있는데, 표면이 까칠까칠해서 그림을 그릴 때에 먹이 닿는 느낌이 다르고, 그래서 적잖은 화가들이 이 종이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을 해 주지만,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다.


궁금해서 하북성 천안의 시 정부에 전화로 문의하니 일단 한 두 군데 종이 공장에서 고려지를 생산하는 곳이 있지만 자기도 정확한 연유를 모르니, 직접 현장에 가보란다. 그러나 내용도 모르고 누구를 찾을 지도 모르고 그 먼길을 달려갈 수는 없다. 그러다가 만난 책이 王志雄이란 사람이 지은 '中國書畵用紙淺談'이란 작은 책이다.


이 책 78쪽에 보니 河北지방의 종이로 '遷安宣'과 '高麗紙'를 소개하고 있다. '遷安宣'은 이 지방에서 나오는 화선지를 의미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이 천안지방은 이미 송나라때부터 제지업이 발달해 몇 개의 제조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뽕나무껍질로 만드는 것으로 질기고 먹의 흡수가 빨라 서화, 그 가운데도 특히 서예에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北遷南宣"이라는 말이 있어올 정도로, 북쪽에서는 하북성 천안의 종이가, 남쪽에서는 안휘성의 선지가 유명했다고 한다.


고려지는 이러한 전통이 있는 하북성 천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원산지는 조선(고려)이지만 현재는 하북성 천안현에서 만들어지는 고려지가 품질이 비교적 좋다. 이런 종류의 종이는 통상 창호를 바르는데 쓰이기 때문에 흔히 속칭 '창호지'라고 부른다"라는 설명이다. 이 고려지는 질기고 안휘성 선지에 비해서 두꺼워 방풍성이 아주 좋은 것으로 돼 있다. 다만 여기서 만들어지는 고려지는 한국에서처럼 닥나무가 아니라 봉나무로 만든다고 되어 있어 기법은 같겠지만 원료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질긴 만큼 그림이나 글시용으로도 쓰지만 표구할 때에 배지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이 너무 개괄적이어서 매냥 불만이었는데, 중국 곳곳의 풍물을 모아놓은 '神州 聞錄'이란 책의 '文化篇'에 더 자세한 얘기가 실려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천안현의 縣城 북문 밖에 3개의 村庄(마을)이 있는데, 모두 '紙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그 세 마을의 이름은 劉紙庄, 吳紙庄, 黃紙庄이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종이공장은 "顯記紙廠(현기지창)"으로서 청나라 말기에 李顯庭이란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이현정이란 사람이 종이 만드는 기술을 조선, 곧 우리나라에 와서 배운 것으로 되어 있다.


1861년 생인 이현정은 천안의 집안에서 지물포를 열어 운영하면서 전후 3차례 조선에 가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배워왔다. 1909년 천진에서부터 기사를 초빙해서 3년반동안 공장터를 마련하고 발전기와 화로, 찌는 통, 뜨는 기계를 차례로 사들여 반기계화된 종이공장을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顯記紙廠(현기지창)이란 이름을 붙이고 '紅辛紙'와 '油衫紙'라는 두 종류의 '高麗紙'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는 당시 조선의 종이와 비슷하지만, 흰 색으로 두껍고 견고하고 질기고 직선의 무늬가 들어있는 그런 종이를 만들어 냄으로서 이 공장의 명성이 전국을 흔들엇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1936년에는 이런 고려지 생산공장이 30여 군데나 생겼다고 한다. 여기서 만든 종이는 동북지방과 화북지방, 북경과 천진 일대에 팔려나갔다. 심지어는 북경과 천진에 분점을 만들어 공급할 정도였다고 한다. 북경에 있던 "春生和", 천진의 "元春興" 등의 판매점은 이곳에서부터 종이를 직접 수송해서 판매하던 곳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물론 질이 좋은 종이들은 멀리 남방에까지 판매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천안지방의 종이 만드는 기술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 때의 상황을 1947년 5월 출판된 <工業月刊>에 실린 '遷安高麗紙'라는 글이 전하고 있다; "불행히 日寇(일본군)의 침입으로 풍전등화, 천식불안의 세월을 보냈다.... 민국 34년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공장은 겨우 顯記紙廠 하나 뿐이었다"


1949년 현재의 중국정부가 들어선 이후 천안의 제지업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해 현재 이 천안현에서 종이를 만다는 가정이나 공장은 1600여개나 된다고 한다. 유명한 '顯記紙廠'은 이름을 "華豊造紙廠"으로 바꾸고 중국 남방의 종이기술도 혼합해서 새로운 종이문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신중국 건립이후 천안에 종이공업이 다시 일어나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高麗紙'만을 전문으로 만들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것이 북경의 지물포에서 마음대로 고려지를 사기가 힘든 이유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북경이나 천진의 나이 많은 화가들은 고려지를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고려지만을 써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룹도 있다고 한다. 중국 땅의 고려지, 그 고려지의 '고려'가 중세시대의 고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인들도 당시까지 한국을 종이에 관한 한 선진국으로 생각하고 그 기술을 배워갔던 것이다.


그 고려지가 더 이상 전문적으로 생산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또 연로한 중국의 서화가들이 세상을 뜨면 더 이상 고려지를 찾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기야 굳이 옛말의 고려지를 다시 찾으면 무엇하겠는가? 이제 한국에서 만든 종이가 예전 고려지보다도 더 쉽게 중국에 들어갈 수 있는 때인데, 여차하면 한국에서 사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청나라 말기와 일제침략 초기를 거쳐 신중국기간까지 중국에 고려지라는 게 있어서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만은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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